WIPI, 과연 추억속으로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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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러 분야에 걸쳐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데, IT 분야에서는 아이폰 출시로 인해 본격적으로 WIPI 의무화 폐지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 도데체 WIPI가 무엇인지 기억을 되살려보기로 했다.

2000년에서 2001년 짧은 기간 동안, 국내 휴대폰 어플리케이션 플랫폼은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걸어왔다.

2000년 9월, LGT가 Java(MIDP) 휴대 응용 프로그램 서비스인 'ez-java'를 시작한 것을 시초로, SKT는 Mini-C를 응용한 독자 플랫폼 'GVM', KTF도 C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MAP 플랫폼을 채용한 휴대폰 응용 프로그램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그 후, SKT는 GVM에 이어 Java 기반의 'SK-VM'을 함께 병용하며 시장 확대를 꿈꿨고, KTF는 BREW로 플랫폼 완전이행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기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당시 CP(Contents Provider) 업체들은 열악한 서비스 개발환경 속에서 이통사들만 100% 의지하며, 무선인터넷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 흐름에 동참하려는데 급급하였다.

이러다 보니 플랫폼 환경변화에 대해서 이렇다 할 의견 개진도 하지 못했고, 사회적 이슈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는데 많은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통사마다 다른 플랫폼 환경은 사용자와 CP업체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SKT 사용자가 KTF 컨텐츠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고, CP업체들도 각 플랫폼에 맞춰 컨텐츠를 따로따로 개발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개발 효율성이 낮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당시 이통사별로 개발자, 기획자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는 CP업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음)

이런 환경적인 한계점을 이통사에서도 인지하게 되었고, 문제점을 해소하여 좀 더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이통사와 관련 단체에서 무선 인터넷 표준화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플랫폼을 통일하여 표준화하자!'

2001년 초, 다양한 플랫폼들이 혼재해 있는 플랫폼 환경을 통일 및 표준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실제로 표준화를 위한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이 조직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한국 표준 어플리케이션 플랫폼인 WIPI(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3개 이통사 외 Motorola나 IBM과 같은 해외 기업들까지 관련 업체들이 참여하여 2001년 5월 24일 KWISF(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를 창립하고, WIPI 표준화를 위한 구체적인 업무를 진행하였다.

2002년 3월 Ver 1.0 > 2003년 2월 Ver 1.1 > 2003년 4월 Ver 1.2 > 2004년 2월 Ver 2.0 > 2004년 9월 Ver 2.0.1 > 2006년 11월 Ver 2.1.1 등이 순차적으로 릴리즈되면서 나름대로 빠르게 진화를 거듭하였다.

WIPI의 걸림돌 - (1)퀄컴

그런데 이 WIPI 플랫폼의 원대하고, 긍정적인 탄생이 보여준 다양한 가능성 이면에는, 여러 장벽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퀄컴과의 갈등이다.

WIPI는 당시 국내 표준 플랫폼으로 전면보급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진행된 플랫폼 사업이었지만, BREW 플랫폼이 한국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인해 퀄컴 측에서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사실 퀄컴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생산해 내는 칩셋이 전세계 유통 단말에 내장되고 있고, 한국으로부터 매년 상당량의 로얄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BREW 플랫폼을 국내에 널리 보급시켜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내 WIPI 전면보급계획은 마치 한국이 해외기술에 대해서 공정한 시장경쟁환경을 저해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이런 이유로 미국 정부의 개입까지 유발시키게 되었다.

미국은 WIPI를 표준화하려는 한국과의 한미통상회의에서 WIPI-BREW 문제를 거론하였다. 이 논쟁은 결국 한국 정부가 모바일 플랫폼으로서 WIPI와 BREW 간 호환성을 갖는 'WIPI on BREW'를 채택하는 것으로 미국측 타협안을 받아들임으로서 일단락 되었다.(2004년 6월)

당시 ETRI에서는, 향후 한국에서 출시되는 거의 모든 단말에 WIPI가 탑재될 것이고, SKT가 미국의 earthlink와 제휴하여 미국 내에서 서비스를 추진했던 것처럼 이통사들의 해외 진출 시 WIPI도 함께 해외시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한 기대와 의지를 보여주었으나 현실에서는 뭔가 답답함이 느껴지던 시기로 기억된다.

WIPI의 걸림돌 - (2)이통사

WIPI는 C와 Java 두 가지 언어로 개발이 가능하여 개발응용 프로그램에 따라 고속성의 C 언어와 생산성의 Java 를 적절히 선택하여 개발할 수 있고, 기본 API 기능이 풍부하며 단말정보로의 접근도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나.. 기존 BREW 등과 같이 이통사 서버를 통해서만 다운로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응용 프로그램 배포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WIPI는 국내 기술이기 때문에 로얄티면에서는 free한 플랫폼이지만, 이것으로 개발된 응용 프로그램은 이통사를 통해서만 배포되기 때문에 개인 또는 일반 기업이 마음대로 배포할 수 없다.

사실 이 부분은 WIPI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한국은 일본과 같이 '갓테어플리(마음대로 배포할 수 있는 응용 프로그램)'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 초기 환경부터 일본처럼 개인 일반이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배포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결과론 적으로 이 부분도 WIPI 확산의 부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누구나 마음대로 개발하고 배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WIPI 플랫폼의 구축 및 운영, 이 플랫폼에서의 개발자들의 양적/질적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WIPI의 걸림돌 - (3)정책

당시 정보통신부는 2005년 이후에 출시하는 무선인터넷 접속기능 탑재 휴대폰에 대해, WIPI 탑재를 의무화하였다. 그런데 무선인터넷 접속기능을 탑재하지 않는 HSDPA단말이 나오면서 '무선인터넷 접속기능이 없는 휴대폰에 한하여 WIPI 탑재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관련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술렁이던 부분은 해외 휴대폰 제조사들의 국내 유입 여부였다. 해외 제조사들에게 있어 WIPI 의무탑재는 한국 시장 진출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시장 구조상 이통사와의 협의가 있어야 유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 WIPI 의무탑재가 완화되었다고 해서 해외 제조사들의 국내 시장 진출이 쉽게 허용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정책이라는게 언제 바뀔지 모르고 한번 예외 조항이 나오게 되면 더욱 관련 규정들이 풀릴 가능성이 있기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당시 정보통신부의 조건부 WIPI 미탑재 정책발표 이후 이슈가 된 단말이 있었는데, 바로 2007년 3월 KTF향으로 나온 LG전자 LG-KH1200이다. 3G 단말임에도 무선인터넷 접속 기능이 배제된 단말이었는데, 무선인터넷에 대한 반감을 고려하여 무선인터넷 기능을 빼고 '저렴한 휴대폰' 이라는 키워드로 가입자 유입확대 및 보조금으로 인한 이통사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출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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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2008년 2월 단종 시점까지 약 75만대가 판매된 LG-KH1200>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통사 보조금 제도가 있어서 일명 '공짜폰'이 성행했었고, WIPI 관련 정책이 이슈가 된 이유가 바로 이런 저렴한 또는 공짜폰의 등장이다.(당시 LG-KH1200은 출시 초기 3개월 간 하루 약 2,000대 내외의 계약건수를 기록하며 대박폰 초기 현상을 보이기도 했음)

정책 하나로 공짜폰이 난무하고 지나칠 정도로 가열된 이통사간 경쟁이 시장 질서를 혼란에 빠뜨려 결국 보조금제도 폐지라는 또 다른 정책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WIPI가 아닌 단말의 출시 및 확산은 WIPI 중심으로 사업을 유지해 온 콘텐츠 및 솔루션 업체들의 생존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점과 함께 이러한 업체들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업계 전반에 대한 미래 조망도 포함하여 검토되었어야 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가폰을 원하는 사용자 욕구충족 및 3G 라는 커다란 시장 흐름에 빠르게 단말을 보급시킬 수 있는 가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해석한다면, 그에 대해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책의 일관성과 정책결정의 신중함이 중요하고, 이통사들은 음성통화 수익의 한계성을 데이터통화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잠시 회상하다보니..

WIPI가 나오기 전에는 불법이긴 했지만, QPST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휴대폰에 게임 등 VM을 집어넣을 수 있었던 때가 생각났다.

QPST는 퀄컴에서 휴대폰 개발용으로 만든 프로그램인데, PC와 휴대폰 간 싱크 케이블로 연결 후 프로그램을 구동하면, 윈도우즈 OS 내에서 폴더관리 하듯이 디렉토리 구조의 화면을 통해 원하는 VM을 넣고, 빼는 것이 가능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환경을 오히려 개방하고 확장시켰더라면 지금의 스마트폰 처럼 누구나 원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삭제할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WIPI 의무탑재 폐지가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외산 스마트폰들의 국내 유통이 불가한 상황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이 꼭 되새김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단어이다.

- 왜 국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외산 단말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들일까?
- 일반 피쳐폰과 스마트폰의 차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 IT강국이라고 외치고, 보급율은 최고라고 자부하면서, 피쳐폰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사용율을 보이는 기능은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에 국한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

WIPI의 업그레이드를 강하고 빠르게 추진하여 글로벌 플랫폼으로서 시장을 견인하던가..
아니면 과감하게 폐지하여 WIPI에 얽매여 있는 비효율적인 업계 구조를 변화시키던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WIPI 폐지와 관련하여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우리 산업 전반적인 부분을 돌아보고 미래 사회에 역행하지 않는 주도적인 결단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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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yworld.com/stein1234 2008.10.14 17:27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

    • Favicon of https://poom.tistory.com 미스터골드 2008.10.14 19:27 신고 address edit & del

      글 내용을 흥미롭게 느끼셨다니 다행이네요..^^ 댓글 공간에서라도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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